하얀 안개가 천천히 천국의 대지를 뒤덮었다.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꿈이 흐릿하게 퍼지는 것 같았다. 솜이는 그 안에 혼자 서 있었다. 새벽의 천국은 찬란하기보단 고요했고, 그 고요 속에서 솜이의 심장은 지독하게 요동쳤다. 기억이 없다. 이름도, 가족도, 자신의 죽음조차도 떠오르지 않았다. 그녀는 마치 빈 껍데기처럼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다.
“누구…였지…?”
그녀는 허공을 향해 물었다. 자신의 목소리조차 낯설었다. 발끝에 닿는 바람은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. 무언가, 아주 중요한 걸 잃어버렸다는 확신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메우고 있었다. 어쩌면 그 잃어버린 것이, 그녀 자신의 이름일지도 몰랐다.
발 아래 펼쳐진 들판은 부드러운 은빛 풀로 뒤덮여 있었고, 멀리서 하늘의 종이 울리고 있었다. 종소리는 고요함 속에 묻힌 감정을 끌어올리는 듯한, 묘한 파장을 갖고 있었다. 그녀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두 눈을 감았다. 희미한 환영처럼 스치는 장면들—피에 젖은 하얀 원피스, 이름 모를 병실, 그리고 흐릿하게 웃고 있는 얼굴 하나.
“그건… 누구였지…?”
그 순간, 뒤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다가왔다. 부드러운 흙을 밟는 소리, 익숙하지만도 낯설기도 한 존재. 고낙준이었다. 그의 모습은 여전히 깔끔했지만, 어딘가 피로가 엿보이는 눈동자였다. 그는 손에 낡은 목걸이를 들고 있었다.
“솜이, 이거… 네 거야. 예전에 항상 하고 다녔어.”
솜이는 조심스럽게 그 목걸이를 받았다. 반짝이는 펜던트 안에는 희미하게 미소 짓는 어린아이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. 자신일까? 아니면… 그녀의 아이? 수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을 맴돌았다. 그러나 그 순간, 그녀의 귓가에 낯선 속삭임이 스쳐 지나갔다.
